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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3일 묵상_ 십자가상의 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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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23일 묵상_ 십자가상의 칠언

 

 

 

눅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주님이 하신 이 기막힌 말씀을 듣던 자들 중에,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이들은 바로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들이었습니다. 처음 매달렸을 때 강도 둘 다 주님께 적대적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예수를 희롱할 때 그들도 같이 욕하였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인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_마 27:44

 

왜 강도들이 욕하였습니까? 그 십자가를 둘러싼 사람들의 비아냥 거림에 답이 있습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_눅 23:35

 

강도들도 그 비아냥거림에 참여합니다. 화가 난 것입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줬기 떄문입니다. 구원할 수 없는 자가 구원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자였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한 강도가 외친 것으로 나오지만, 처음 욕할 때는 둘 다 같이 욕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_눅 23:39

 

분명 예수는 그리스도이신데 자신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경스러운 표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예수가 구원하지 않은 이가 또 있습니다. 바로 예수를 비아냥거리고 있는 바로 그 강도입니다. 그 강도는 그곳에서 구원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죄인을 구하러 오셨지만, 자신을 의인이라 생각하는 죄인과 자기 죄를 시인하지 않는 죄인까지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구원사역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자동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에 이르시므로 우리들의 모든 죄는 용서 받을 가능성으로 개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이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은 죄를 시인하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대신 지신 죄의 용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_롬 10:9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강도입니다. 처음에는 그도 예수를 같이 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어쩌면 주님의 첫 번째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였습니다. 주님을 인정한 것입니다.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_눅 23:40-41

 

어떤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주님의 첫 번째 말씀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깨달음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지 않은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탄원하는 모습에서 강도가 깨달은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이 말씀하신 '저들'중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는 말씀은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었습니다. 강도가 자신의 죄를 몰라서 그랬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죄는 무의식 중에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의 죄와 잘못에는 함부로 정죄할 수 없는 어떤 이유와 살아온 질곡등 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의 예수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몰라서 그랬습니다."

 

기막힌 이야기였습니다. 그 순간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환희가 온 것입니다. 그 강도가 말을 바꾼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우 태연하게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탁은 매우 숨죽인 희망 사항이었습니다. 용기가 생겼을 뿐입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_눅 23:42

 

'용서해 달라'는 말을 그냥 할 수는 없었습니다. "몰라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있었지만, 자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말입니다. "기억하소서." 좀 더 풀어서 쓰면 이런 뜻입니다.

"혹시 생각나시면 기억이라도...."

그래서 기억해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주님은 강도의 그 고백을 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지체하지 않고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다른 표현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_눅 23:43

 

"기억이라도 해달라"고 말하는 강도에게 예수님은 '동행'을 요청하신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과 스스로 뻔뻔한 느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강도에게 주님은 '나와 함께'라는 말로 그 두려움을 없앴습니다. 엄청난 죄인인 까닭에 주님의 초청에도 의심할지도 모를 그를 위해 동행 약속을 한 것입니다. "걱정 말고 같이 가자."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당하시고 계신 십자가의 무게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은 한 명의 영혼이라도 구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그런 간절함의 증거였습니다.

 

 

 

묵상 행동_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십시오.

주님의 초청에 응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하십시오.

더 이상 주님을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