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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_기록

"네가 반드시 나와 한가지로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 유산 그리고 다음세대] 십자가 유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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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반드시 나와 한 가지로 낙원에 있으리라" [십자가 유산 그리고 다음세대] 십자가 유산 1 (길선주 목사)

 

 

 

 

누가복음 23장 39-43절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제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강도라 불림받던 두 사람 역시 함께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수를 조롱했던 것과 달리, 다른 이는 구원을 선언받으며 생을 마감합니다. 죄과가 그리도 무거웠던 자가 이처럼 단시간 내에 구원을 얻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러나 비록 단시간이었을지라도 그가 신자로서의 자격을 완성한 것이 분명합니다. 몇 가지 조건들이 증명합니다.

 

구원 얻는 신앙에 있어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 자신의 죄를 절실히 회개 하였습니다. 십자가가 선사하는 통렬한 고통 가운데서라면 울부짖으며 세상과 사람들을 저주하기 십상인데, "우리들의 받는 것은 우리들의 행한 것에 합당하다"라던 그의 고백이 회개의 증거입니다. 손과 발이 찢김으로 가해진 고통보다 양심이 찢기며 가해진 고통이 더 컸기에, 더는 견딜 수 없어 참회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그는 '믿음'이라는 신자의 두 번째 요건을 충분히 달성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강도를 향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라고 질책하였습니다. 이 말이 예수를 비방하던 맥락에서 나온 질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이라는 말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동시에 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임을 확실합니다. 그 어떤 신비한 이적을 접하지도 못했건만, 자신들과 함께 십자가 위에서 무력하게 죽어가고 있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분명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습니다.

 

신자가 세 번째로 할 일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예수가 죄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던 때, 반면 지금껏 예수를 따르던 모든 이들이 침묵하였고, 제자들은 도망갔으며,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고 있던 그때 그는 이 모든 침묵과 소리를 다 부정하며 홀로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의롭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며 예수의 의로움을 증거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를 의인으로 증거 해 주셨습니다.

 

네 번째는 '소망'입니다. 이처럼 죽음을 앞둔 극한의 고통 중에는 자포자기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그는 도리어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외침으로써 자신의 소망을 피력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영생과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누누이 들었음에도 기어이 숨어버렸던 제자들, 또한 부활 예수를 만난 뒤에야 부활의 소망을 가졌던 제자들과 달리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마주하면서도 그분께 영생을 구했던 그의 소망은 진실로 위대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기도'입니다. 그는 최후의 핏방울을 떨구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시옵소서." 인생의 마지막 호흡과 함께 내뱉었던 이 기도는 어쩌면 그의 남은 생애 전부의 시간과 맞바꾼 기도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강도가 된 가룟 유다를 잃으셨으나, 죽음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되찾는 기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 예수의 최후의 제자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그에게 구원을 선언하였습니다.

 

출처 [길선주-한국 기독교 지도자 강단설교] 길선주 지음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떄에

나를 생각하소서

 

 

아멘.